릴레이 리스트 ⑦ – 열다섯번째, 한탕 시원하게 치는 작품

영화나 만화 속에서는 한 탕 시원하게 사기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짜릿하다. 그래서 사기꾼이 나오는 영화나 만화를 찾아보았다. 편식을 해서 그런지 같은 만화가나 감독들의 작품이 많은 느낌.


범죄의 재구성

2004 / 최동훈 감독 / 박신양, 염정아, 백윤식 출연

최동훈 감독의 데뷔작이자, 나에겐 그의 베스트. 내가 싫어했던 박신양을 호감으로 만들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. 박신양, 염정아, 백윤식, 이문식 등 당시 특 A급 배우는 없었는데도 괜찮은 성적을 냈었다. 한국은행을 털어서 50억을 챙긴다는 당시로서는 과감한 설정에 탄탄한 시나리오가 뒷받침 되었고, 최동훈 감독 특유의 그들만의 세상에서 실제 있음직한 언어 구사에 빠져들었던 영화였다. 이후 내놓은 『도둑들』 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. 아마 이런 작품에 요즘 같은 캐스팅이라면 정말 난리 날 것 같다는 생각.


오션스 일레븐 (Ocean’s Eleven)

2002 /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/ 조지 클루니, 맷 데이먼, 앤디 가르시아, 브래드 피트, 줄리아 로버츠 출연

말도 안 되는 캐스팅을 잔뜩 집어 넣어서 만든 영화의 시초격이 아닐까 싶다. 조지 클루니, 맷 데이먼, 앤디 가르시아, 브래드 피트, 줄리아 로버츠 등등. 한 영화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배우들이 아닌데, 이 때부터 이런 영화들이 유행을 했던 것 같다. 착착 손발 맞는 도둑들의 기막힌 한탕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재미있긴 하다. 그런데 그래서 뭐지 ?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. 그래서 후속편들은 안 봤지만, 한탕 치는 영화 목록에서 이 영화를 빼자니 섭섭해서 추가하였다.


이탈리안 잡 (The Italian Job)

2003 / F. 게리 그레이 감독 / 마크 월버그, 샤를리즈 테론, 에드워드 노튼 주연

한창 에드워드 노튼에 빠져있을 무렵에 본 영화다. 당시에는 오로지 에드워드 노튼이 어떻게 나오느냐에만 집중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가 멋없게 나와서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. 그래도 한탕치는 영화적 재미는 『오션스』 시리즈보다 더 좋았었다. 그 외에도 샤를리즈 테론의 리즈 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.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해서 베니스의 배경 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.


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(Lock,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)

1999 / 가이 리치 감독 / 제이슨 플레밍, 덱스터 플레처, 제이슨 스타뎀 주연

이 영화를 이 리스트에 넣는 것이 맞나 싶지만, 말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제목의 이 영화를 어딘가에는 넣고 싶어서 꾸역 꾸역 넣었다. 가이 리치 감독의 데뷔작으로 무려 15년도 더 된 영화인데, 처음에는 중구난방으로 튀어가는 것 같아도 갈수록 기가 막히게 딱딱 떨어져나가는 놀라운 구성의 영화다. 이게 진짜 15년도 더 된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. 오래 전에 봐서 다 까먹을 때가 됐으니, 다시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. 이렇게 시나리오가 좋을 수도, 이렇게 범죄영화가 웃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.


캐치 미 이프 유 캔 (Catch Me If You Can)

2003 /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/ 톰 행크스,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

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화제작. 남을 속이는데 천재적인 기질을 보인 프랭크와 그를 쫓는 FBI최고의 요원 칼 핸러티의 추적이 이어진다. 디카프리오의 능글능글한 모습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유쾌했던 기억이 난다. 훌륭한 두 주연 배우와 말이 필요없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뭉쳤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. 그리고 이 영화에는 요즘 주연급으로 곧잘 출연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. 필모그래피를 보면 단역으로도 거의 초반에 불과한데, 그 때가 우리 나이로 30. 역시 인생 길게 봐야 한다 🙂


도박묵시록 카이지 (賭博黙示録カイジ)

2000 ~ 연재중 / 후쿠모토 노부유키 글, 그림 / 국내에서는 전체 39권 완결

일본엔 도박 만화가 참 많지만, 나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밖에 안 읽어봤다. 대부분 마작 같은 실제 도박을 소재로 해서 룰을 모르는 나로선 재미있게 읽을 수가 없는데, 『도박묵시록 카이지』에서는 그 흔한 가위바위보로 도박을 한다. 그 외에도 친치로(주사위 게임), E카드 등 쉬운 게임으로도 긴박감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. 특히, 한정 가위바위보는 무한도전에서 소재로 써먹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. (빅뱅과 붙은 추격전에서 비슷한 것을 했지만, 카이지의 그 느낌이 안 나왔다) 후반부에는 마작을 다뤄서 이해를 못 하고,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예 국내 출판을 안 해버려서 못 보고 있는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.


은과 금 (銀と金)

1992~1996 / 후쿠모토 노부유키 글, 그림 / 11권 완결

『은과 금』은 『도박묵시록 카이지』보다 일찍 나왔고 덜 대중적인 작품이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, 이때도 탁월한 심리묘사는 여전했다.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로는 최고의 카리스마 캐릭터 긴지 때문이다.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 같은데, 특히 인생사기 바이블로 부족함이 없는 대사는 이거다.

모리타, 사람의 허를 찌르게
욕망이 포화지점에 달했을 때, 사람의 주의력은 맥없이 날아가지.
그 때를 노려 !

굉장히 끝이 애매하게 마무리됐고, 그 덕분에 2부 루머는 참 무성한데 정작 소식은 없다. 언젠가 긴지를 다시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.


다음 릴레이에는 『은과 금』의 긴지가 포함된 주제를 다룰 예정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