릴레이 리스트 ⑦ – 열세번째, 짧지만 강한 여운의 단편집

만화책은 모든 종류의 놀거리를 통틀어 가장 호흡이 길다. 작품과 함께 나이 먹는 경우가 한둘이 아닌데, 반대로 짤지만 강한 여운의 작품들을 선정해봤다. 한 권도 아니고 한 권에 여러 단편들이 묶인 경우니, 각각의 이야기는 20여페이지 정도 되는 편이다. 시간은 없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접해보고 싶을 때 읽어보기를 권한다.


아이의 체온 (こどもの体温)

요시나가 후미 글, 그림 / 단권

요시나가 후미의 단편집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5개가 실려있다. 이전 리스트에서 소개했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 포스팅에서.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『사랑해야 하는 딸들』이나 『그는 화원에서 꿈을 꾼다』 도 좋다. 요시나가 후미는 단편집에서도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작가니까 말이다.


결혼식 전날 (式の前日)

호즈미 글, 그림 / 단권

어쩌다 보니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이 많다. 데뷔부터 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만화가 주제에서도 다뤘고, 예전에 리뷰도 작성한 적이 있다. 이 만화는 결혼,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갖고 짧고도 진하게 그려냈다. 단편 각각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, 단행본 전체의 구성이 인상적이다. 그리고 나는 이 만화가 바람직한 ‘성인’만화라고 생각하는데, 굳이 19금 수위로 넘어가지 않아도 성인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만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.


바이 바이 베스파 (Bye Bye Vespa)

박형동 글, 그림 / 단권

가장 좋아하는 단편집은 아니지만, 10페이지 분량의 단편 중에서는 가장 좋아한다. 아니, 가장 여운이 남는다.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해야하나. 예전에 다른 길을 걷는 노홍철과 하하라는 포스팅을 작성할 때 언급했었는데, 지금도 그 포스팅에 삽입된 이미지를 보면서 다시 곱씹으며 읽게 된다. 이 작품은 웹에서도 볼 수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.


망고의 눈물 (マンゴーの涙)

코다마 유키 글, 그림 / 단권

코다마 유키는 좋아하는 여성 작가 중 하나인데, 대표작인 『언덕길의 아폴론』 외에 초기 단편집들도 재미있다. 『망고의 눈물』은 총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, 이 중 3개가 괜찮다. 단편집을 보는 묘미 중 하나가 대표작의 모티브가 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, 『달걀왕자』 가 그런 단편이다. 한권짜리 만화인 『백조 액츄얼리』에 백조가 사람이 되는 설정이 있는데, 이 단편에서는 전생에 비극적인 사랑을 했던 연인이 현실에서 달걀과 사람의 관계로 만난다. 그 외에 『야마라지의 우울』이나 『Rover』 등 독특한 설정의 이야기들이 많아 재미있게 볼 수 있다.


스피카 (スピカ)

우미노 치카 글, 그림 / 단권

솔직히 단편집으로의 완성도는 긴가민가하지만, 우미노 치카의 팬으로서 이 리스트에 안 넣을 수가 없다 🙂 정말 정말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하면 별로였지만, 그래도 『3월의 라이온』 이나 『허니와 클로버』의 뿌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충분하다.

본편과 똑같은 제목의 단편 『스피카』에는 발레소녀와 야구부소년의 이야기가 그 중에 가장 완성도도 높고, 대표작들과도 가장 느낌이 비슷하다. 나머지 단편들은 평타 수준이라 다소 아십다.


외톨이들 (ひとりたち)

칸노 아야 글, 그림 / 단권

『오토멘』으로 잘 알려진 칸노 아야의 단편집으로, 밝은 분위기의 순정만화인 『오토멘』과 달리 어두침침한 소재를 다룬다. 4개의 단편이 있는데 그 중 『영원한 허니』 와 『악성 -ZERO-』 가 좋다.

『영원한 허니』는 암시와 반전이 돋보이는 단편으로, 전체적으로 깔끔한 구성이 돋보이는 잘 만들어진 단편이다. 그림체도 취향이라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. 그리고 『악성 -ZERO-』는 유일하게 죽음, 상실에서 거리가 있는 단편으로 완전하게 통제되고 강압적인 사회 속에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다 사형을 선고 받은 저지 스프라이트와 그러한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침없이 범죄를 저질러온 악의 카리스마 젠, 이 둘의 탈옥을 그린 내용으로 죽음이 아닌 벽을 부숴 자유로 넘어가는 내용을 그렸다. 꽤 괜챃은 설정이라 단편으로 끝내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는데, 『악성』 이란 별도의 작품이 나와있다고 한다.


쇼트 프로그램 (ショート・プログラム)

아다치 미츠루 글, 그림 / 3권 완결 + 걸즈 타입

역시 단편하면 아다치 미츠루다. 20, 30여권의 장편에서도 함축된 대사와 여백으로 진한 여운을 만들어내는데, 그 장기가 단편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. 단편집 『쇼트 프로그램』 은 현재 3권과 걸즈 타입이 발매되었는데, 1권이 백미다.

위에서 대표작의 모티브가 된 각종 설정이 초기 단편집에서 보인다는 말을 했었는데, 이 단편집이 특히 그렇다. 대표작이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도 『H2』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. 아다치 미츠루의 대표작을 하나라도 읽어봤으면 (만화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쯤은 읽어봤겠지만) 반드시 읽어보길 권하는 단편집이다.


다음 릴레이에는 아다치 미츠루가 포함된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. 이제 만화 이야기에서 좀 벗어나야지 🙂